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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성주 한개마을 성산이씨를 중심으로

지안해용 2017. 4. 11. 15:40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성주 한개마을 성산이씨를 중심으로 -| 당쟁. 예송관련자료

樂民(장달수) | 조회 17 |추천 0 | 2017.02.08. 15:17

 

첨부파일 붕당의_대립에_따른_친족호칭어의_분화_양상.pdf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 성주 한개마을 성산이씨를 중심으로 -

 


1)안 귀 남*

 


<차 례>
1. 들어가는 말
2.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사회적ㆍ문화
적ㆍ역사적 배경
3. 한개마을 성산이씨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4.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택호 종류와
기능
5.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방언연구는 언어학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일반 언어학적 연구와 언
어문화적인 측면에서 언어의 사회적 사용을 설명하는 사회언어학적인
연구로 나뉜다. 이 연구는 동성마을인1)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사회적ㆍ
역사적ㆍ문화적 배경을 통해 친족호칭어의 분화 요인을 살피고 분화
조건에 따라 그 양상을 밝힌다는 점에서 사회방언학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에서의 사회방언학은 주로 세대, 성별, 사회

 


*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1) 동성마을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친족이 모여 사는 마을로서 각성마을에 대립되
며, 선행연구에서는 ‘씨족촌락, 동족촌락, 종족촌락’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동성
마을은 반촌마을뿐만 아니라 민촌마을도 있음을 고려할 때 한개마을은 반촌마을
로 이해할 수 있다.
96 語文學(第95輯)

 

계층, 직업, 종교, 종족 등 사회적인 요인에 의한 언어분화의 상관관계
를 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주제와 관련된 친족호칭어의 사회적 사용에
대한 연구는 반촌과 민촌의 계층적인 차이에 초점을 둔 김기봉(1985),
강신항(1976), 최명옥(1982)의 연구와 동성마을의 특정 성씨를 대상으
로 친족호칭어의 분화를 고찰한 정종호(1990), 서보월(2003), 안귀남
(2005, 2006) 등이 있다.
이러한 연구의 대부분은 친족관계를 맺고 있는 동성마을 성씨들의
친족호칭어 연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성마을이라고
하더라도 일률적으로 유형화하기는 어렵다.2) 예컨대 한개마을의 성산
이씨는 일반언어학적인 측면의 음운이나 문법적인 측면에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특이하게 친족호칭어의 사용에서만 차이를 보이기 때문
이다. 결국 동성마을의 친족호칭어는 세대, 성별 등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없고 동성마을의 역사적ㆍ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됨으로써 친족호칭어의 분화 요인을 더 분명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 연구는 친족호칭어나 택호의 문화 내적인 변이를
형성하게 된 여러 가지의 배경을 통해 친족호칭체계의 의미구조와 사
회적 사용을 고찰함으로써 기존의 사회방언학적인 연구와 차별화하고
자 한다.

 

1) 연구방법 및 범위
이 연구는 친족호칭어 체계 자체의 내적인 형식을 통해 친족호칭어
의 사회적인 사용을 설명한다. 지칭어는 친족원에 대한 분류체계를 완
전하게 보여주는 장점은 있지만 특정한 개인 간의 관계 내에서 특정한

 

2) 최근 안동지역 동성마을의 역사와 문화적인 전통에 대한 기초조사(안동문화연구
소, 2003)에 의하면 안동지역은 69개의 동성마을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친족호
칭어를 대상으로 한 기존의 연구를 통해 동성마을은 반촌과 민촌, 남인계열(안동
지역 동성마을의 대부분의 성씨)과 노론계열(소산의 안동후김)에 따라 친족호칭어
의 분화를 보인다.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97

 

언어행위의 일부분으로서 언어적 상황을 규정하거나 사회적 상호작용
을 규정짓지는 못한다. 반면 친족호칭어는 화자와 청자간의 사회적인
관계나 개인적인 배경 등 직접적인 언어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사
회문화적인 상황적 맥락 등과 같은 사회언어학적 변수들이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자어인 지칭어보다는 고유어로 이루어진
호칭어 연구가 더 유용하다.3)
친족호칭어의 범위는 부계의 직계존속 4대, 비속 2대, 방계는 6촌으
로 한정하였다. 또한 부계 남성ㆍ여성 화자와 부계남성화자의 배우자
즉 혼입(婚入)한 여성화자의 호칭어를 대상으로 하였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는 혈연의 거리에 따라 친소의 차이를 나타내는 촌수법에 얽매
이지 않는다. 즉 항렬과 연령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나 10촌 이상의 먼
친족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조사방법은 성산이씨의 역사적ㆍ문화적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구
술담화방식과 친족호칭체계의 내적 형식을 이루는 분화조건인 세대,
직계와 방계, 혈족과 인척, 항렬과 연령, 결혼 여부, 성(性)을 파악하기
위한 간접질문지를 사용하였다. 조사기간은 2004년 1월 10~13일 네
차례에 걸친 조사를 하였으며, 전화 통화를 통해 보충 조사를 실시하
였다.

 

2) 제보자
<표 1> 제보자


성씨명 성명 나이 성별 종파 및 세손 주소 택호 불천위 유무
1 성산이씨 이영태 85 남
성산이씨 정언공파
숙파 33세종손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411번지
교리댁 없음
2 성산이씨 이수학 68 남
성산이씨 정언공파
숙파 33세종손
성주군 월항면
대산1리 421번지
북비고택 응와 이원조

 

3) Bean(1978:ⅺ), 정종호(1990:2-3) 재인용.
98 語文學(第95輯)

 

한개마을의 성산이씨는 붕당의 대립에 따라 남인계열과 노론계열의
집안으로 나뉘며, 양 계열의 집안에서 사용되는 친족호칭어의 쓰임은
분명하게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본 연구의 제보자는 남
인계열을 대표하는 <북비고택>과 노론계열을 대표하는 <교리댁>의 종
손을 대상으로 하였음을 밝혀둔다.

 

2.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사회적ㆍ문화적ㆍ역사적 배경
한개(大浦 : 마을 앞 하천에 있는 큰 나루)마을은 성산이씨의 동성마
을로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반촌마을이다. 한개마을의 입향조는 이여
량(李汝良)이며, 우(友), 선(善), 시(時) 세 아들 중 1450년 경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李友)에 의해 개척되었다. 한개마을을 이룩한 사람은 이우의
삼남인 이양의 후손들이다. 한개마을이 성산이씨의 동성마을로 자리를
잡은 것은 17세기 초 21세손인 월봉(月峯) 이정현(李廷賢 1587~1612)
이며, 동성마을로 번성한 것은 17세기 후반 그의 아들 이수성(李壽星
1610~1672)에 이르러서이다.
월봉은 이양의 현손으로 성산이씨의 정언공파(正言公派)이다. 퇴계
의 직계 제자로 당시 많은 선비들을 양성한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공부
하고 1612년(광해군 4) 문과 식년시에 합격하여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과거에 합격한 바로 그 해에 26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결국 월봉의 외
아들 이수성(李壽星 1610~1672)의 네 아들인 달천(達天), 달우(達宇),
달한(達漢), 달운(達雲)이 모두 이 마을에 정착하여 각각 백파(伯派), 중
파(中派), 숙파(叔派), 계파(季派)의 파시조가 되어 본격적으로 이 마을
을 이루게 된다.
성산이씨의 네 파 중에서 가장 큰 부를 이루었던 것은 계파였으나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쇠퇴하였고, 숙파의 후손들이 출중한 인물을 다
수 배출하고 번성하면서 점차 마을을 주도하게 되었다. 교리댁ㆍ북비
고택ㆍ한주종택ㆍ하회댁, 월곡댁은 모두 숙파에 속하며 이 종택들은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99
이수성의 셋째 아들인 달한(達漢)을 중심으로 한 자손들이다.
아래 <표 2>는 성산이씨의 대표파인 숙파의 계보이다. 특이한 것은
아래 세대로 내려오면서 종손의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하여 섭사자(攝祠
子) 또는 섭사손(攝祠孫)4)을 데려와서 대를 이었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
올수록 촌수가 가깝다는 점이다.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계보가 형성된 배경은 도표의 화살 표시를 통
해 알 수 있다. 먼저 <교리댁>은 23대 달한의 아랫대인 24대에서 미정
(彌靖), 미응(彌膺), 미신(彌紳)의 세 아들이 있었다. 맏이인 미정(彌靖)
에게 아들이 없자, 둘째인 미응의 둘째 아들 석오(碩五)가 큰집(미정(彌
靖))으로 가서 대를 이었다. 29대에 와서도 또 아들이 없자 28대 원조
(源祚)의 세 아들 중 셋째 아들인 귀상(龜相)에 의해 대를 잇게 된다.
<교리댁>은 미응(彌膺)의 셋째 아들인 석구(碩九)로부터 현재 33대의
이영태(李榮泰)에 이른다.

 

<표 2> 성산이씨숙파(叔派)의 계보도

 


4) 남을 대신하여 제사를 지냄.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섭행(攝行).
100 語文學(第95輯)

 

<북비고택> 역시 28대에 와서 아들이 없자 조카인 원조는 한주종택
에서 양자를 오게 된다. 현재 <북비고택>의 종손인 33대 이수학(李洙
鶴) 씨 역시 양자로 온 경우인데, 32대 종손인 종석(宗錫)의 후손이 없
자, 종석의 넷째 동생인 경석(景錫)의 아들인 수학이 종석의 양자로 오
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하회댁과 월곡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33대 이건
석 씨의 부인인 하회댁 종부는 수빈(洙彬), 수직(洙稙), 수철(洙喆)의
세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큰댁인 월곡댁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맏
아들인 수빈을 양자로 보냈으며, 막내아들인 수직은 작은댁인 영석 씨
의 양자가 되었다. 결국 하회댁의 종손은 둘째 아들인 수철 씨가 맡게
되었다.

 

<표 2>를 통해 한개마을의 성산이씨는 같은 시조로부터 분파된 한집
안 사람으로 친족의 범위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두 혈
연관계로 맺어져 크게는 시향제(時享祭)를 위해 조직된 문중(門中)이
며, 작게는 기제사(忌祭祀)를 지내는 당내(堂內)에 해당된다.
한개마을의 성산이씨는 <북비고택>를 중심으로 하는 <한주종택>,
<월곡댁>, <하회댁>의 호칭법과 <교리댁>을 중심으로 한 <진사댁>,
<극와종택>의 호칭법이 다르다. 그렇다면 한개마을 내의 성산이씨가
두 부류의 친족호칭어로 분화되는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한개마을의
사회적ㆍ역사적ㆍ문화적인 배경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한개마을의 성산이씨는 고려 말 성주의 학맥을 주도하던 가문으로
조선 개창 직전 친명ㆍ친원파로 분리되어 각 분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이 개창하면서 유교적 절의를 지켜 낙향ㆍ은둔한 두문동 72
현이 상당수 성주출신이었고, 16세기 사림파가 등장할 무렵에는 다수
의 사림파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퇴계와 율곡 이후 유림 사이에서도 학
파가 형성되어 학맥의 성장을 보였다.
성주권내에서 17세기 말을 기준으로 이후에는 노론의 학맥이 지배
적이었으나, 그 이전에는 조식의 학맥인 남명학파와 이황의 학맥인 퇴
계학파, 영남의 두 학파의 충돌로 새롭게 발흥한 한려학파(寒旅學派)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01

 


등 영남의 다른 지역에 비해 다양한 학맥이 공존하고 있었다. 특히 조
식과 이황으로부터 모두 학문을 배웠던 정구는 이황의 문인이라기보다
는 조식의 문인으로 인식되었을 만큼 조식 문인에 가까웠다. 성주지역
은 조식 계열의 학맥이 압도적 우세를 보인 가운데 이후 정구와 정인홍
이 대립하다가 정인홍의 대북 세력이 패배한 이후에는 대체로 정구의
학맥이 거의 단일 학맥을 형성하였다. 이후 정구의 질서인 장현광이 정
구의 문인을 자처하지 않은 데서 생긴 한려시비(寒旅是非) 이후 정구학
맥은 거의 단절되는 원인이 되었다. 정구의 직전문인이 활동하던 다음
세대부터는 주도적인 학맥이 없이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17세기 말 이
후 영남지역 가운데 성주가 노론학맥이 가장 활발하게 출현할 수 있었
던 것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성주 지역에 이황 계열의 학맥이 주류를 이루던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이며, 대표적인 학자는 한개마을 출신인 이진상(1818~1886)과
칠곡 출신의 장복구(1815~1900) 등이다. 조식과 이황의 장점을 받아들
인 정구는 조식 일변도의 정인홍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정구는
조식학파에서 제 위치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황학파에서도 적
통으로 인정되지 못하였다. 결국 정구는 조식학맥에 의해 칠곡으로 이
거하게 되었고, 정구의 사후 성주지역 내에서 그의 학맥을 계승한 특출
한 인물이 배출하지 못하면서 점차 쇠퇴하였고 북인의 학맥도 함께 몰
락하게 된다. 이러한 사정에서 17세기 후반부터 성주권내는 노론학맥
에 연결되는 인사가 많아지게 되었다. 이는 현재 <교리댁>의 친족호칭
어가 노론계열의 성향을 보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정구가 정인홍과
의 갈등을 겪으면서 성주 유림 중에 광주이씨, 벽진이씨, 청주정씨는
남인 가문으로 파악된다. 반면 조식계 학맥을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있
었지만 조선후기 성산이씨 이덕함(李德涵)은 노론 학맥으로 전신(轉身)
하게 되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19세기 들어서 이진상(1818~1886, 성
주) 등 이황계열의 주류를 차지하기 전인 17세기 말부터 19세기 동안
성산이씨 내에서는 노론학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였을 것으로 보인
다.5) 결국 의례의 문제로 불거진 노론계열과 남인계열의 대립은 현재까
102 語文學(第95輯)

 


지도 친족호칭어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이다.
또한 <북비고택>의 ‘北扉’(북으로 난 문)에서 드러난 상징적인 의미
를 통해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한필원 2004:113). 이 마을의 중심
부에는 돈재 이공 신도비가 있다. 북비공으로 더 잘 알려진 돈재 이석
문(李碩文 : 1713~1773)은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었
다. 1762년 정순왕후의 아버지인 김한구(金漢耈)와 그 일파인 홍계희,
윤급 등의 사주를 받은 나경언이 노론의 일당전제에 비판적이었던 사
도세자의 실덕과 비행을 지적한 10조목의 상소를 올렸다. 노론의 지지
를 받았던 영조는 이를 본 후 크게 노해 세자를 휘령전으로 불러 자결
을 명했다. 어가를 배중하던 돈재는 뒤주 속에 갇힌 세자를 구하려고
세손을 업고 어전에 나아가 간하였으나, 세손을 뒤주에 넣고 돌로 누르
라는 어명을 받게 된다. 그러나 돈재공은 “신은 죽더라도 감히 명을 받
들지 못하리이다”라고 하였다. 재차 어명이 내려졌으나 끝내 받들지 않
고 직언을 하다가 곤장을 맞고 파직을 당하게 된다. 이후 공은 한개마
을로 낙향한 후 북쪽에 문을 내고 세자가 묻힌 북녘을 향해 매일같이
재배했던 절신이었다. “나는 북쪽으로 난 작은 대문으로 허리를 숙여
북비댁으로 들어가고 다시 되돌아 사도세자를 그리워한다.”라는 이공
신도비에 적힌 글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영조가 세자
의 일을 크게 후회하여 북비공에게 훈련원주부를 제수하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신도비에 적힌 대로라면 사도세자를 죽인 임금이 살아 있는 북쪽으
로 대문을 옮기고 북쪽을 향해 지속적인 예를 올렸다는 얘기인데 이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부분이다. 결국 북비공이 북쪽으로 대문을 옮긴
이유는 붕당의 대립이라는 사회상과 관련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돈재의 나이 10살 무렵인 1722년(경종2) 성주는 이미 붕당대립의 영
향권에 있었다. 성주 지역에서 노론학맥이 더욱 확산된 것은 노론의 대
신 민진원이 신임사화로 이 지역에 귀양을 오게 된 것과 노론 4대신으

 

5) 김성윤(2005:59-62) 참조.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03

 

로 꼽히던 영의정 김창집이 거제부에 안치되었다가 서울로 압송되던
중 소론에 몰려 인근 성주에서 사사(賜死)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돈재
가 중앙 관계에 진출했을 때는 다시 노론이 우위를 차지한 정국이었고,
그 와중에 파직을 당하고 낙향하였으니 그가 사도세자를 이간시킨 노
론의 무리들을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
17세기 후반부터 성주권 내는 대부분 노론계열의 세력이 커져 있을
때, 고향에 돌아온 돈재는 당시의 권신이었던 김상로, 홍계희와 뜻을
같이 하는 무리들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석구의 집(현재 교리댁)을
드나드는 것을 보게 되었고, “시류에 아첨하는 무리들과 접하기 싫다”
고 하여 문을 뜯어 북쪽으로 옮기니 사람들은 이때부터 북비공(北扉公)
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돈재가 북쪽에 문을 낸 가장 큰 이유는
<교리댁>으로 드나드는 노론들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일 가
능성이 높다. 당시 석문과 사촌 간이던 <교리댁>의 석구는 석문이 낙향
하였을 때 석문을 위로하기도 하였다지만, 친족이면서도 붕당대립의
구도에 있는 노론계열인 석구와의6) 갈등은 어느 정도 짐작되기도 한다.
결국 <교리댁>과 <북비고택>은 친족이면서도 붕당의 대립으로 인해
친족호칭어의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사, 풍습 등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의례에서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최초 붕당의
시발인 ‘예송논쟁’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최초의 붕당은 선조 8년에 관직을 두고 갈라진 동인(김효원, 이황과
조식)과 서인(심의겸, 이이와 성혼)이며, 다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 노론벽파, 노론시파로 나뉜다. 결국 당쟁은 권력투
쟁으로 자기 당에 유리한 명분ㆍ의리를 억지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
았고 그 대표적인 것이 효종의 사후 벌어진 ‘예송논쟁’,7) 즉 인조의 후

 

6) 한개마을 성산이씨 중 이석구와 같은 시기에 문과에 급제한 李海鎭(영조 27년
1751년)은 영남지역에 노론의 학맥이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한 김원행의 문
인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은 노론계열일 가능성이 높다.
7) 예송문제 이후 골이 깊어진 붕당들은 싸움을 계속하여 체제의 붕괴 위험으로 시행
된 것이 영ㆍ정조의 탕평책이다. 노론/소론의 정쟁을 다독이려던 탕평책은 외척세
도정치의 길을 열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외척을 끌어들인 결과 순조(1790~
104 語文學(第95輯)

 

취 왕비인 조대비가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서인(노론)과 남인 사이의 예송논쟁은 나라를 다스리는 정책의 견해 차
이가 아니라 효종의 장례와 대왕대비인 조대비의 복상문제라는 사소하
게 보이는 문제였지만, 성리학을 치국이념으로 삼은 조선으로서는 성
리학에 근거한 오례가 국가정책 이상의 중요성 있는 사안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주자가 정립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은 조선 중기에 오면서 퇴계
이황을 원조로 하는 영남학파의 주리론과 율곡 이이를 원조하는 기호
학파의 주기론으로 학문적 입장이 갈린다. 이러한 학문적 입장의 차이
는 정치적 견해에 대한 차이로 연결되어 주리론자들은 남인으로, 주기
론자들은 서인으로 서로 다른 정파를 이루게 된다. 남인은 학맥으로는
이황의 제자, 지역적으로는 경상좌도의 기반에서 성장한 사람이 그 중
심을 이룬다.

 


남인들은 1674년(현종15) 2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승리함으로써
한때 정국을 주도하기도 하였으나, 17세기 말부터는 서인, 그 중에서도
우암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노론이 득세하고 오랫동안 정계를 주도
하자 남인들은 향촌에서 학문의 연구에 몰두하였는데, 영남지방의 선
비들 대부분이 남인 계열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다.
근세 유학의 3대가로 꼽히는 한주 이진상(1818~1886)의 한주 종택
사랑에 걸린 주리세가(主理世家)는 퇴계의 주리론을 발전시켜 심즉이
설(心卽理說)을 세워 한주학파를 만들었다. 이진상은 ‘퇴계 이황학봉
김성일장흥효이현일이상정류치명이진상’
으로 이어지는 남
인계열에 속하였다. 또한 한주정사(寒洲 精舍)의 마루에 달린 ‘조운헌
도제(祖雲憲陶齊)’란 편액은 ‘주자와 퇴계의 학문을 사숙하는 곳’이란
뜻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 북비고택(혹은 대감
댁), 하회댁, 한주 종택, 월곡댁은 남인계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숙파의 파종가, 계파의 파종가인 <교리댁>은 진사댁, 극와종
1834) 이후 정치는 ‘안동김씨’를 중심으로 한 외척이 완전히 장악하였다.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05

 

택과 함께 예외적으로 노론에 속하였다. 이는 한개마을의 성산이씨가
이례적으로 마을 안에 서로 대립하는 당파가 공존함으로써 갈등의 여
지가 충분히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개마을에서 <교리댁>과 <북비고
택>이 친족관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모두 성산이씨의 숙파
계열로서 노론 계열의 <교리댁>이 29대에 이르러 아들이 없자 당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북비고택>에서 온 섭사손(攝祠孫)에 의해 대를 이
어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성마을의 친족호칭어는 항렬이 우선이다. 그러나 한개
마을의 숙파(叔派) 즉 <북비고택>과 <교리댁>은 혈연으로 맺어진 당내
임에도 불구하고 항렬에 앞서 붕당의 대립에 따른 의식 세계의 차이에
의해 친족호칭어가 분화되었던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결국 한개마을
성산이씨에서는 혈연의식보다 붕당의 대립에 의한 의식이 우선하였음
을 의미한다.

 

3. 한개마을 성산이씨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2장에서 <북비고택>과 <교리댁>의 친족호칭어 분화 요인은 붕당의
대립이었음을 확인하였다. 3장에서는 남인계열의 <북비고택>과, 노론
계열의 <교리댁>을 대상으로 친족호칭어의 분화 조건인 직계와 방계,
항렬과 연령, 세대, 연령과 결혼 여부, 혈족과 인척, 성(性)에 따라 친족
호칭어의 분화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1) 직계(Lineality)와 방계(Collaterality)
직계는 나와 수직적인 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증조부/모(G3)-조부/모
(G2)-부/모(G1)-나’이며, 방계는 나의 직계에서 벗어난 체계 즉 ‘종증조
부/모, 종증고모/부(G3)-종조부/모, 종고모/종고모부(G2), 백부/모, 중부/
모, 숙부/모, 고모/고모부, 종숙부/모(G1), 나의 형제/자매’를 말한다. <표
106 語文學(第95輯)

 


4>에서 ‘조부/모-부/모-백부/모-숙부/모’에 대한 호칭어는 표면적으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어형성면에서 직계와 방계에 관계없이 공통
적으로 ‘아비/어미’를 어기를 가지고 있다. 이는 <표 3>을 통해서 더 분
명하게 드러난다.

 


<표 3> 문헌자료에 반영된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2003:10)
鷄林遺事(1103-4) 語譯朝鮮館驛語(14세기말) 語譯中世國語(15,6세기)
1 祖曰漢丫秘한아비 한아비
2 父曰丫秘아비 父 阿必 아비 아비(어비, 아바님)
3 母曰丫彌어미 母 額密어미 어미(어, 어마님)
4 伯叔亦皆曰丫査(秘) 아비 伯父 掯阿必 큰아비 아자비
5 叔伯母亦皆曰丫子(彌) 아미 伯母 掯額密큰어미 아자미

 

예컨대『조선관역어』에서 방계인 백부/백모의 호칭어는 掯阿必(큰
아비)/掯額密(큰어미)로,『계림유사』에서는 ‘아비/아미’로, 후기 중
세국어 자료에서는 ‘아비/아미’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어형
성면에서 볼 때 ‘아비/아미’는 ‘앚-+아비’로, ‘아미’는 ‘앚-+*아
미’(또는 ‘어미’)로 분석되어 모두 ‘아비/어미’를 어기로 갖는 직계어형
임을 알 수 있다. 단지『조선관역어』에서는 ‘큰-’이, 후기 중세국어 자
료에서는 ‘-’이 접두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친족계보에서는 직계와
방계로 분명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중세국어 이래로 친족호칭어는 접
두어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모두 ‘아비/어미’를 어기로 하는 직계어
형으로 실현되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의 형제들에 대해 15세기 이후 근대국어의 얼마까지는 ‘앚-,
맏-’ 계열들이 체계를 이루고 있었으나 근대국어 후반에 ‘큰-, 작은-’이
결합한 친족 어휘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북
비고택>의 방계인 고모부 계열은 모두 ‘새-’가 접두되어 차이를 보인
다. 이는 남인계열의 성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질로 인척임을
드러낸다.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07

 


<표 4> 직계와 방계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직계 방계


당색
명칭
부계남성․여성화자의 호칭
북비
고택
교리댁 명칭 북비고택 교리댁
G3
증조부
증조모 할배
할매
할부지
할무이
종증조부/모
종증고모/부
OO할배/OO할매
OO할매/OO새할배
[OO]할배/[OO]할매
[OO]할매/[OO]새할배
OO할부지/OO할무이
OO고모할무이/OO고모할부지
OO할부지/OO할무이
OO고모할무이/OO고모할부지
G2
조부
조모
종조부/모
대고모/부
G1


아배/
아부지
어매
아부지
어무이,
엄마
백부/모
중부/중모
숙부/모
종숙부/모
고모/부
종고모/부
큰아배, 큰아부지/
큰어매, 큰엄마
작은아부지/작은어매
작은아부지/
작은어매(기혼), 아재(미혼)
작은어매, 작은엄마,
OO아재, OO아지매
OO아지매/OO새아재
OO아지매/OO새아재
큰아부지/큰어무이
둘째 아부지/둘째 어무이
작은/O째 아부지/
작은 어무이(기혼),
삼촌, 아제씨(미혼)
OO아제씨/OO아주머니
OO고모/OO고모부
OO고모/ OO고모부

 

<표 4>는 성산이씨에서 붕당의 대립에 따라 직계와 방계의 친족호칭
어가 어떻게 분화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세국어의 ‘아비/어미’
의 어기는 ‘아배/어매’(북비고택), ‘아재/아제씨’(교리댁)로 방언형이냐
현대 표준어에 가까우냐에 따라 분화되며, <북비고택>은 ‘큰-, 작은-,
새-, 앚-’으로, <교리댁>은 ‘큰-, O째, 앚-’의 접두어에 따라 다양한 분화
양상을 보인다.
예컨대 ‘아배(북비고택)/아부지(교리댁)’는 중세국어의 ‘아비’에 대해
모두 방언형이지만 기원적으로 볼 때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아배’는
중세국어 ‘아비’의 호칭어 ‘아바’에 기원을 둔 방언형이며, ‘아부지’는
‘아버지’의 방언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근대국어 이후에 등장하
는 ‘아바지’에 소급하는 것으로 근대국어에서 ‘아비, 아바, 아바님, 아바
니’가 체계를 이루었던 점을 고려할 때, ‘아바지’ 역시 특정 지역에서
중앙어로 편입된 친족 어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리댁>의 ‘아
부지’는 ‘아버지’의 방언형으로서 현대국어 표준어에 가까운 어형이며,
108 語文學(第95輯)

 

<북비고택>의 ‘아배’ 역시 방언형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고어에 대한 방언형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8)
이와 같이 직계와 방계의 구분에도 불구하고 친족호칭어는 적장자
의 직계 가족을 이상형으로 하는 전통적 가족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
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아들이 없는 경우에도 사위
나 외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조상의 재산 상속도 남녀의 차별 없이 균등하게 이루어
졌으며, 조상에 대한 제사도 형제간에 돌아가면서 지내는 윤회봉사(輪
廻奉祀)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주(周)나라
종법제도가 계승되어 조상의 제사는 적장자손(嫡長子孫)이 승계하며,
아들이 없으면 적차자손(嫡次子孫)이 승계하도록 하였던 것이 이를 뒷
받침한다.

 


2) 항렬(Collateral relative)과 연령(Age)
항렬은 혈족의 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계통 사이의 대수 관계를 나타
내는 것으로 세대와 그 의미가 같다. 일반적으로 동성마을의 친족호칭
어는 항렬을 우선으로 한다. 그러나 친족호칭어에서 항렬만 따지는 것
이 아니라 연령을 함께 고려하는 경우가 있다. 항렬과 연령이 비례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비례하지 않을 경우에는 연령과 항렬을 함께 고려
된 친족호칭어를 사용하게 된다. 예컨대 항렬은 높지만 연령이 10살 이
상 적은 경우와 항렬은 낮지만 연령이 10살 이상 높은 경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8) 직계와 방계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에 대한 일부 내용은 익명의 심사자의 견해
에 힘입은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거친 글을 바로잡는데 도움을 주신
점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09

 

<표 5> 연령과 항렬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택호 연령 항렬 부계남성화자 안동의 성씨 부계남성화자
G2
북비고택
연상
祖行
OO할배/OO할매
안동권씨
OO할배/OO할매
연하 OO할배/OO할매 OO할뱀/OO할매
교리댁
연상 OO할아부지/OO할아부지
안동후김
OO할아부지/OO할아부지
연하 OO할아부지/OO할아부지 OO할아부지/OO할아부지
G1
북비고택
연상
叔行
OO아재/OO아지매
안동권씨
OO아재/OO아지매
연하 OO아재/OO아지매 OO아잼/OO아지매
교리댁
연상 OO아제씨/OO아주머니
안동후김
OO아제씨/OO아주머니
연하 OO아제씨/OO아주머니 OO아제씨/OO아주머니
G0
북비고택
연상
同行
OO형님/OO딕이, OO아지매
안동권씨
OO형님/OO딕이, OO아지매
연하 이름, 字+씨/OO딕이 이름, 字+씨/OO딕이
교리댁
연상 OO형님/OO딕이, OO형수
안동후김
OO형님/OO딕이, OO형수
연하 이름, 字+씨/OO딕이 이름, 자+씨/OO딕이
G-1
북비고택
연상
姪行
OO어른
안동권씨
OO어른, 자+씨/OO딕이
연하 이름, 字/딕이 이름, 字/딕이
교리댁
연상 OO어른, OO양반
안동후김
OO어른, OO양반
연하 이름, 字/딕이 이름, 자/딕이

 


<표 5>는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북비고택>과 <교리댁>, 안동지역의
<안동권씨>와 <안동후김>의 항렬과 연령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을 제시한 것이다. 먼저 항렬은 낮지만 연상인 경우(行低年上 G0,
G-1)를 보면 ‘OO어른(북비고택)/OO양반, OO어른(교리댁)’, ‘OO어른,
자+씨/OO딕이(안동권씨)/OO어른, OO양반’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항렬은 높지만 연하인 경우(行高年下, G1, G2)
에서는 ‘OO아재(북비고택)/OO아제씨(교리댁)’이다. 그런데 ‘항고연하
(行高年下)’인 경우에 노론계열인 <안동후김>과 <교리댁>은 차이가 없
으나 <북비고택>은 안동지역의 남인계열과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안
동지역의 남인계열의 ‘OO아잼/OO할뱀'9)은 독특한 호칭법으로 <북비고택>과 비교된다.

 

9) 안동권씨에서 항렬과 연령이 비례하지 않는 항고연하의 경우이다. 예컨대 항렬은
높지만 연령이 10살 이상 적은 경우에 함부로 할 것을 경계한 호칭법인 셈이다.
110 語文學(第95輯)

 

3) 세대(Generation)
친족호칭어의 기본적인 분화조건은 세대(Generation)이다. <표 6>은
부계남성화자와 부계여성화자의 호칭어가 G-1에서 G3세대의 분화조건
에 따라 <북비고택>과 <교리댁>이 분화를 보이고 있다. G-1에서는 <북
비고택> <교리댁> 모두 특별한 호칭 없이 미혼인 경우에는 이름(FN :
First)인 종자명호칭(從子名呼稱, Tek : Teknonymy)을 사용하며, 기혼인
경우에는 ‘O실, O서방’으로 부른다. 반면 G0에서 G3세대는 친족호칭어
의 분화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북비고택>에서는 ‘증조부
(G3)/조부(G2)/부(G1)’를 ‘(큰)할배/할배/아배’라고 부르지만 <교리댁>
은 ‘할부지/할부지/아부지’라고 부른다. <북비고택>은 고어의 방언형이
며 <교리댁>은 현대국어의 표준 호칭어에 가깝다.
친족호칭어는 일반적으로 세대와 계보적 공간이 일치한다. 그러나
성산이씨의 경우 세대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유형은 원
래의 친족호칭어가 가진 의미 영역보다 확대된 친족호칭어에서 나타난
다.10) 몇 가지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비고택>에서 형수(G0)를 ‘새아지매(초반), 아지매(후반)’라
고 부르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아지매’는 중세국어 ‘아미’의 방언형
이다. ‘아미’는 본래 지칭자와 삼촌 관계에 있는 여성, 곧 ‘고모’, ‘이
모’를 지시하였으나 ‘고모, 이모’ 반열에 있는 여성 친족원 곧 ‘형수, 외
숙모, 백모, 숙모’ 등에 두루 의미가 확대 적용된 친족호칭어라고 할 수

 


항렬이 높고 연령이 10살 이상 적으면 ‘OO아잼’, ‘OO할뱀’이라고 부른다. ‘아재,
할배’에 존칭접미사 ‘-님’의 축약형인 ‘-ㅁ’이 붙은 경우인데, 반면 노론 계열인 안
동후김(소산1동)은 항고연하인 경우에 ‘OO아제씨’라고 불러서 차이를 보인다.
10) 안동권씨(풍산, 가곡리)의 동성마을에서는 방계의 종조부/모(G2)를 ‘OO할배/OO할
매’로, 직계인 조부/모(G2)를 ‘큰아배/큰어매’로 부른다(서보월 2003:159). 직계와
방계의 친족호칭어는 모두 ‘아배/어매’를 어기로 하지만 한정사의 차이에 따라 구
분된다. 방계인 경우는 ‘할-’이, 직계인 경우는 ‘큰-’이 접두된다.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11

 

있다. 이는 ‘형수’가 ‘어머니’의 부재 시 어머니를 대신할 만큼의 존재
로 생각했던 시기였으므로 자연스럽게 G1의 세대인 ‘고모, 이모, 숙모,
백모’와 같은 ‘아미’의 호칭어로 불려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혼입한 여성화자 역시 시가 친족원을 지시하거나 부르는 경우
에 친족 호칭어가 딱히 마련되지 않아서 그 자식의 친족 호칭어를 대용
하여 쓸 수밖에 없다. 결국 ‘시백부, 시숙부’를 부르는 ‘아지뱀(북비고
택)/아주버님(교리댁)’을 ‘남편의 형제’ 특히 기혼의 ‘시동생’이나 ‘시
숙’(媤叔, 남편의 형님)에게 사용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자식에
게 ‘백부, 숙부’는 그 어머니에게는 남편의 형이나 아우이기 때문에 얼
마든지 ‘아지뱀(북비고택)/아주버님(교리댁)’을 대용해 쓸 수 있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용법이 ‘아지뱀(북비고택)/아주버님(교리댁)’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는 방언형이냐 표준어냐에 따른 분화로 설명할
수 있다. 그 밖에도 현대국어의 ‘아주버님’은 ‘남편과 같은 항렬에 있는
사람으로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로 풀이되고 있는 점을 고려
할 때, 아지뱀(북비고택)/아주버님(교리댁)이 시숙이나 결혼한 ‘시동생’,
뿐만 아니라 ‘시숙부, 시백부’에게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은 그 의미 영역
은 표준어보다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셋째, <북비고택>에서 ‘형부(G0)’를 ‘새아재’라고 부르는 경우이다.
‘새아재’는 G1인 ‘고모부’의 고유한 호칭어이지만 G0인 ‘처제’의 호칭
어에도 가능한 것은 처제와의 사회적인 격리를 호칭어에 드러내기 위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비고택>의 ‘새아재’라는 호칭어는 고모부
(G1)뿐만 아니라 형부(G0)의 호칭어로도 사용되어 그 의미 영역이 확
대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성산이씨의 친족호칭어 중에는 표준어의 의미 영역보다
확대되어 사용되는 몇 가지의 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조선후기
이후 남녀간의 엄격한 내외나 사회적인 거리를 나타내기 위해 방식이
었던 것으로 보인다.
112 語文學(第95輯)

 


<표 6> 세대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당색
세대
名稱
북비고택 교리댁
부계 남성ㆍ여성 화자
G3 曾祖父/母(큰)할배/할매 할부지/할무이
G2 祖父/母할배/할매 할부지/할무이
G1
父/母아배/어매, 엄마 아부지/어무이, 엄마
姑母/姑母夫아지매/새아재 아주머니, 고모/고모부
伯父/母큰아배, 큰아부지/큰어매, 큰엄마 큰아부지/큰어무이
仲父/母작은아부지, 작은아배/작은어매, 작은엄마 둘째아부지/둘째어무이
叔父/母작은아부지(기혼)/작은어매, 아재(미혼)
O째 아부지(기혼)/O째어무이
삼촌, 아제씨(미혼)
季父작은아부지(기혼)/작은어매, 아재(미혼)
O째 아부지(기혼),
끝에 아부지/O째 어무이
끝에 삼촌, 아제씨(미혼)
G0
兄/兄嫂
히아(어릴 때), 형님(기혼)/새아지매(초반),
아지매(후반), *아지뱀/형님,
**오라베/**택호+히아
히아(어릴 때), 택호+형님(기혼)/택호+형수님,
*아주버님/형님, **오빠(오라버님:편지)/**언니
弟/弟嫂
이름(미혼), 택호(기혼)/수씨
*데림(미혼)/아지뱀(기혼)
/*새댁, 동서
이름(미혼), 택호(기혼)/제수씨
*데림(미혼)/서방님, 아주버님(기혼)
/새댁, 동서
姊/姊兄/
**兄夫
누야(어릴 때)
누님/새형님/**새아재, *형님/아지뱀
누야(어릴 때)
누님(기혼)/자형/**형부,
*형님/아주버님
妹/妹夫
*이름(미혼), O실이(기혼), *O서방댁/O서방
*액씨
*이름(미혼), O실이(기혼), *O서방댁/O서방
*아가씨(미혼)
G-1 O실, O서방, FN, Tek
<*혼입한 여성 **부계여성화자 G : Generation(세대)>

 

<북비고택>은 안동지역 남인계열 성씨들의 친족호칭어와 계보를 같
이하며, <교리댁>은 노론계열인 안동후김의 친족호칭어와 계보를 같이
한다. 그러므로 한개마을 성산이씨 친족호칭어의 분화 요인은 남인계
열과 노론계열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인계열의 호칭어는 안동문
화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퇴계 학맥과 관련이 있으며, 그 보수성에 의해
고어나 고유어형, 방언형을 반영한다. 반면 노론계열의 호칭어는 현대
국어의 표준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기호지방에 기반을 둔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13

 

이이의 학맥을 이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북비고택>과 <교리댁>의 친족호칭어가 언제부터 분화되었
는지 그 시기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2장을 통해 친족호칭
의 분화 발생 원인이 노론계열에서 찾을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노
론계열의 세력이 컸던 17세기에서 19세기의 어느 시점에서 분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교리댁>의 친족호칭어가 현대국어의 표준어에
가까운 것은 조선후기 노론계열이 오랫동안 중앙에서 세력을 장악함으
로써 중앙 관직에 오를 기회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중앙 관직의 사람들
과의 잦은 교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론계열의 성산이씨
들은 중앙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며, 친족호칭어 역시 이러한 맥
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후손들의 의식에 반영
됨으로써 친족관계에 있는 두 계열은 현재까지도 친족호칭어에서 차이
를 보이고 있다.

 

4) 연령(Age) 및 결혼(Marriage)의 여부
부계의 남성화자나 여성화자, 혼입한 여성화자의 친족호칭어는 연령
및 결혼의 여부에 따라 다양한 분화를 보인다. <표 7>은 부계남성․여
성 화자의 아버지 형제를 5명으로 가정한 친족호칭어이다. 아버지 형
제의 연령 순서에 따라 ‘백부(伯父)-중부(仲父)-부(父)-숙부(叔父)-계부
(季父)’로 분화 양상을 보인다.
‘父’의 호칭어는 아배<북비고택>/아부지<교리댁>로 분화된다. ‘아
배’는 고어 ‘아바’에 기원을 둔 방언형으로 안동을 비롯한 남인계열의
호칭어와 같으며, <교리댁>의 ‘아부지’는 ‘아버지’의 방언형으로 ‘아버
지’가 ‘아바지’에 소급하는 것으로 볼 때 현대국어 표준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백부(伯父)의 호칭어는 ‘큰아배(북비고택)/큰아부지(교리
댁)’이며 중부(仲父)의 호칭어는 ‘작은(북비고택)’과 ‘둘째(교리댁)’의
한정어를 사용한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표준어에서 중부(仲
父)를 ‘둘째큰아버지’라고 하지만 <북비고택>에서는 ‘작은아부지’라고
114 語文學(第95輯)

 

부른다. 표준어는 백부를 중심으로 순서상 둘째를 나타내며, 아버지의
형님이기 때문에 ‘큰아버지’로 부른다. 그러나 <북비고택>에서는 아버
지의 형님임에도 불구하고 백부를 제외한 사람은 모두 ‘작은아배(仲
父)’라고 부른다. 이것은 안동지역 남인계열 성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
난다. 친족계보에서 방계인 백부나 중부의 친족호칭어가 직계어형을
반영하는 것은 중세국어 이래로 변함이 없으나 중부인 경우에 <북비
고택>은 ‘작은-’이 <교리댁>은 표준어와 같이 ‘O째-’가 붙는 차이를
보인다.
<표 7> 父系의 연령 및 결혼 여부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화자 부계 남성․ 여성 화자
순서
父系
名稱
택호
가 나 다 라
伯父
(첫째 큰아버지)
仲父
(둘째 큰아버지)

(아버지)
숙부1(叔父)
기혼 미혼
숙부, 작은아버지 삼촌, 아저씨

 

- - 연상 연하

 


1 북비고택 큰아배/큰아부지 작은아배/작은아부지 아배/아부지 작은아부지
(끝에) 아재
(막내) 아재
2 교리댁 큰아부지 둘째아부지 아부지 작은(넷째)아부지 삼촌, 아제씨
<북비고택>의 친족호칭어는 대부분 안동지역의 남인계열과 일치하
지만 백부의 호칭어에서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안동지역의 남인계열
동성마을은 대부분 ‘맏아배(백부)/큰아배(조부)’11)로 부르지만, <북비고
택>은 ‘큰아배(백부)/할배(조부)’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안동지역의 남
인계열 동성마을에서는 ‘큰아배(조부)/맏아배(백부)’로 어기는 동일하

 

11) 안동방언의 ‘큰할배(증조부)-큰아배(조부)-아배(부)’는 현상과 원칙이 일치하지 않
는다. 예컨대 증조부는 ‘큰큰아배’가 되어야 하는 원칙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에 반해 백부는 ‘맏아배’라고 부르는데 중세국어의 ‘맏아비(백부)’의 ‘아비’가
직계어형인 ‘아배’로 바뀌었으나 한정어는 ‘맏-’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직계의 호
칭어는 ‘큰-, 한-’의 한정어로 드러나며, 방계의 호칭어는 ‘맏-, 작은-’의 한정어를
사용한다.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15

 

지만 접두어에 차이를 보이는데 조부에 대해 중세국어의 ‘한-’이 <북비
고택>에서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나 안동방언에서는 ‘큰-’으로 교체
되었다. 그리고 백부는 중세국어에서는 ‘-’이 안동방언에서는 그대로
이어지나 <북비고택>은 ‘큰-’으로 교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숙부(叔父)의 호칭어는 결혼 여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미혼의 숙
부에 대해 <북비고택>은 ‘아재’, <교리댁>은 ‘아제씨, 삼촌’으로 불리지
만 기혼의 숙부는 중부(仲父)나 숙부(叔父)와 같이 ‘OO아배(북비고
택)/OO아부지(교리댁)’로 불린다.

 


<표 8> 혼입(婚入)한 여성화자와 부계남성화자의 연령별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화자 혼입한 여성 화자 화자 부계남성․여성 화자
연령
세대
명칭 연상 연하
연령
세대
명칭 연상 연하
북비고택 교리댁 북비고택 교리댁 북비고택 교리댁 북비고택 교리댁
G0
시숙 아지뱀 아주버님 -
G1
고모/부
아지매,
고모/새아재
고모/고모부 - -
시동

- -


아지뱀
서방님,
아주버님
- -
아지매/
O서방
고모/
미 0서방

데림 데림
손위
시누

형님 형님 - -
G0
姊/姊兄
*형부
형/兄嫂
누야/새형님,
*새아재
히야(少),
형님(기혼)/
(새)아지매
누야(어릴 때),
누님(기혼)/
자형/*형부
히야(少)
형님(기혼)/
형수님
女弟/妹夫- -
이름/
0서방
이름/
0서방
손아
래시
누이
- -


O서방댁 O서방댁
男弟/弟婦- -
이름/
수씨
이름/
미 계수씨

액씨 아가씨
동서
형님 - - - 손위 올

택호+히아 언니
동서, 새댁 새댁 손아래 새댁 새댁
<*부계여성화자>
116 語文學(第95輯)

 

두 번째로 <표 8>은 혼입한 여성 화자와 부계 남성․여성 화자인 경
우 연령에 따른 호칭어의 분화를 나타낸다. 혼입한 여성화자는 남편 형
제(G0)의 연령에 따라 시숙(남편의 형님)과 시동생(남편의 동생)의 호
칭어를 구분한다. 시숙이나 기혼의 시동생에 대해 <교리댁>은 ‘아주버
님, 서방님’, <북비고택>은 ‘아지뱀’, 미혼의 시동생은 <북비고택>과
<교리댁> 모두 ‘데림’으로 부른다.
손위시누이(기혼)에 대해 <북비고택>과 <교리댁>은 모두 ‘형님’으로
부른다. 손아래 시누이(미혼)에 대해 <북비고택>은 ‘액씨’, <교리댁>은
‘아가씨’라고 부르지만, 기혼의 손아래시누이는 모두 ‘O서방댁’으로 부
른다.
손위 고모부는 ‘OO새아재(북비고택)/OO고모부(교리댁)’이지만 손아
래 고모부는 모두 ‘O서방’이라고 부른다. 손아래 올케에 대해서는 모두
‘새댁’이라고 부르며, 손위 올케에 대해서는 <북비고택>은 ‘택호+히
아’, <교리댁>은 ‘언니’라고 불러서 차이를 보인다.

 

5) 혈족(Consanguine)과 인척(Affine)
친족호칭어는 화자와 맺어지는 혈연관계의 유무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표 9>를 통해 혈연관계를 통해 화자와 친족관계를 맺은 혈족의
호칭어와 혈족과의 혼인관계로 맺어진 인척의 호칭어의 세대별 분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혈족과 인척의 호칭어는 G0-G2에서 확연히 구
분되는데, <북비고택>은 공통적으로 인척의 호칭어에 ‘새-’를 접두한
다. 예컨대 <북비고택>에서는 대고모부(G2)를 ‘새할배’, 고모부(G1)를
‘새아재’, 형수(G0)를 ‘(새)아지매’, 자형(G0)을 ‘새형님’, 형부(G0)를 ‘새
아재’라고 부른다. 그러나 노론 계열인 <교리댁>은 ‘할부지, 고모부, 형
수님, 자형, 형부’ 등 으로 부른다. <북비고택>에서는 직계와 방계의 혈
족에 대해 ‘새-’를 접두하지 않지만, 방계의 인척에게는 ‘새-’를 접두한
다. 그러나 <교리댁>에서 대부분 표준호칭어와 일치하며 ‘새-’를 접두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17
하지 않는다.
<표 9> 혈족과 인척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명칭
혈족
명칭
인척
직계 방계 방계
부계남성화자의 호칭 부계남성화자의 호칭
북비고택 교리댁 북비고택 교리댁 북비고택 교리댁
G2 조부/모 할배/할매 할부지/할무이
작은할배/
할매
작은할부지/
작은할무이
대고모/부
OO할매/
새할배
00할무이/
할부지
G1
백부/모 큰아부지 큰아부지
고모/부
OO아지매,
/새아재 고모/고모부
중부/모
작은아부지/
작은엄마
둘째아부지/어무이
부/모
아배,
아부지/엄마
아부지/어무이
숙부/모
아재(미혼),
(OO)아재/
작은엄마(기혼)
삼촌/아제씨(미혼),
0째(작은)아부지/
작은어무이(기혼)
G0
兄/*姊
히야(어릴 때),
형님(기혼)/
*오라배
히야(어릴 때),
형님(기혼)/*오빠
형수/올케
자형/형부
(새)아지매/
*택호+히야
새형님/*새아재
형수님/*언니
자형/*형부
남제/
여제
이름/이름
이름/**O실
이름/이름
이름/**O실이
제수/
매부
수씨/
O서방
제수씨/0서방
G-1
조카/
질녀
이름/
(이름)**O실이
(이름)조카/
(이름) **O실
질부/
질서
질부/
O서방
질부/0서방
<*부계여성화자, **기혼>

 

6) 성(Sex)
한개마을의 성산이씨 친족호칭어는 화자와 청자의 성(性)에 따라서
도 구별된다. 화자가 부계남성화자인 경우와 부계여성화자로 나누어
검토한다. 화자의 윗세대나 아랫세대는 청자의 성적(性的) 특성만을 의
식하지만 본인의 세대에서는 화자와 청자의 성적 특성이 함께 관여한
다. 부계의 남성․여성화자가 G2 이상의 세대를 호칭할 때는 <표 6, 8,
9>을 참조할 수 있는데, <표 10>은 G0만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화자와 청자의 성(性)에 따른 호칭어 중에서 ‘형, 언니'의 호칭어는
성(性)이나 당색에 관계없이 모두 ‘형님’으로 부른다. 예컨대 부계남성
118 語文學(第95輯)

 

화자가 기혼의 형에 대해 ‘형님(1), 혼입한 여성화자가 손윗동서에 대해
형님(2), 손위 시누이에 대해 형님(3)으로 구분하였다. 부계여성화자냐
부계남성화자냐에 따라 청자인 자형의 호칭어와 형부의 호칭어는 차이
를 보인다. 부계남성화자는 자형(G0)을 ‘새형님(북비고택)/자형(교리
댁)’으로 부르며, 부계여성화자는 형부를 ‘새아재(북비고택)/형부(교리
댁)’로 부른다. 특히 <북비고택>의 호칭어는 모두 G0세대이지만 화자
와 청자의 성(性)에 따라 호칭어가 차이를 보인다. <북비고택>에서는
형부를 ‘새아재’라고 부르는 경우와 혼입한 여성화자가 시숙이나 시동
생(기혼)을 ‘아지뱀’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G1인 숙부의 호칭어인 ‘아
재’에서 후자는 G1인 시숙부의 호칭어에서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그
러나 <교리댁>에서는 시동생의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서방님’이라고
부른다.

 

<표 10> 성(性)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


청자의

화자의 성(性)
명칭
부계남성화자의 호칭
명칭
부계여성화자의 호칭 혼입한 여성화자의 호칭
북비고택 교리댁 북비고택 교리댁 북비고택 교리댁
G0
M 兄
히야(어릴 때)
형님(1)(기혼)
히야(어릴 때)
형님(1)(기혼)
오빠 오라베
오빠(오라버님:
편지)
*아지뱀
*서방님/
아주버님
F 兄嫂
OO+새아지매(초반)
OO아지매(후반)
OO형수님
올케
(*손위
동서)
OO+히야 언니 *형님(2) *형님(2)
M 姊누야
누야(어릴 때)
누님(기혼)
언니
히야(어릴 때)
OO+히야(기혼)
언니 *형님(3) *형님(3)
F 姊兄OO새형님 자형 형부 OO새아재 OO형부 새아지뱀 서방님
M 男弟이름 이름 男弟이름 이름
*데림(미혼)
*아지뱀(기혼)
*데림(미혼)
*서방님(기혼)
F 弟婦OO수씨 OO제수씨 弟婦새댁 새댁 *동서, 새댁 *동서, 새댁
M 女弟
이름(미혼)
O실이(기혼)
이름(미혼)
O실이(기혼)
女弟
이름
O실이(기혼)
이름
O실이(기혼)
*액씨(미혼)/
O서방댁(기혼)
*아가씨(미혼)/
O서방댁(기혼)
F
妹夫
弟夫
O서방 O서방
妹夫
弟夫
O서방 O서방 *O서방 *서방님
<M : Male(남성), F : Female(여성), *혼입한 여성 화자>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19

 


4.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택호 종류와 기능
3장의 친족호칭어 분화 조건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택호(宅
號)’이다. 택호(宅號)는 기휘관념(忌諱觀念)에서 생겨난 것으로 ‘집이
름’을 나타낸다. ‘주인의 호+종가(댁, 종택, 고택)나, 주인의 관직명이나
벼슬이름+댁, 안주인(여성)의 출신지명+댁, 당호+댁’을 택호로 사용하
기도 한다.
대개 반가의 결혼한 여성은 자신의 출신지명으로 이름을 대신하였
으며, 남편 역시 부인의 택호로 불린다(김미영 2002:339-340). 3장에서
살펴본 ‘OO+친족호칭어’의 ‘OO'는 바로 ’여성의 출신지명‘인 택호이
다. 한 집안의 호칭어에 사용되는 택호는 항렬, 연령, 성(性)과 직접관
련이 있다. 부계사회에서 남성을 변별하기 위하여 여성의 택호를 사용
하는 것은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것으로 지적하기도 한다(장용걸
1988:98). 하지만 종지명제(從地名制)인 ‘여성의 출신지명+댁’은 원래
‘집이름’이지만 집뿐만 아니라 개인의 호칭 및 지칭으로도 사용되었다.
특히 여성의 호칭어인 ‘집이름’이나 ‘관직명’으로 하는 택호는 변별력
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혼반을 나타내는 구실을 한다. 본 장에서는 성
산이씨의 동성마을인 한개마을의 택호를 유형화하고 그 의미와 기능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주인(남성)의 호+종가ㆍ종택ㆍ고택
한개마을에는 주인의 호를 택호로 하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예를 들면 ‘한주종택, 극와종택, 북비고택, 월봉종택’을 들 수 있다. 월
봉 이정현(1587~1612), 북비공 이석문(1713~1773), 응와 이원조(1792
~1871), 한주 이진상(1818~1886), 극와 이주희(1866~1946), 북비 이석
문(1713~1773) 등의 호를 딴 것이다. 주인의 호를 택호로 사용하는 경
120 語文學(第95輯)

 

우는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 등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한개
마을 사람들이 벼슬보다는 이름, 곧 명예를 중시해왔음을 의미하며(한
필원 2004:82), 학식은 있으나 벼슬을 하지 않은 그야말로 선비가 많았
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비고택(北扉古宅) 역시 북비공(北扉公) 이석문
의 호 역시 강직한 선비의 마을임을 상징하고 있다.
종택이라면 ‘호+종가(종택)’를 사용할 수 있고, 종가를 이룬 당대 조
상의 호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북비고택>은 당대 조상의 호
가 아닌 8대조의 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응와(凝窩) 이원조(1792~
1971)12)가 지금의 건교부장관에 해당되는 공조판서(정2품)의 벼슬을 지
냈지만 그의 집을 ‘판서댁’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선비정신을 드러내려
는 맥락에 있다. 한개마을의 성산이씨는 벼슬로는 응와, 학문으로는 한
주를 꼽지만, <북비고택>으로 더 잘 알려진 것을 보면 북비공 이석문의
선비정신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의미한다. 주인의 호를 사용하는 경우
에는 ‘호+어른, 호+양반’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다만 친족관계에서 ‘주
인의 호+친족용어’의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후자의 방식인
‘호+아재, 호+형님’은 화자의 관계에 따라 호칭, 지칭어에 모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한개마을에는 하회마을의 양진당, 충효당과 같은 당호(堂號)
를 사용하는13) 택호는 없다. 당호는 ‘집이름’이기 때문에 개인을 호칭하
거나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호+댁’의 형태로
사용될 수 없고, 다만 ‘양진당 어른, 양진당 큰아들’ 등으로 사용된다.
이와 같이 ‘당호+어른’은 지칭으로는 사용될 수 있지만 호칭으로는 사
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성김씨 지례종가는 지촌 종택이라 하는데 당
호는 ‘무언재’이다. 이것은 지촌 종택을 나타내는 ‘집이름’을 말한다.

 

12) 한주 종택에서 양자로 간 응와 이원조(한주의 작은아버지)는 18세 때 대과에 급제,
한성판윤, 공조판서의 요직을 지냈다. 자신의 본가인 한주종택을 잊지 못하고 친조
카인 한주를 학문의 길로 이끌었다.
13) 양진당(보물 제306호)은 류운룡(柳雲龍)의 대종택이며, 충효당(보물 제414호)은 유
성룡(柳成龍 : 1542~1607)선생의 장자가 재건한 집의 이름으로 서애 유성룡 선생
을 모신 종가이다. 양진당과 충효당은 조선 중기의 주택이다.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21

 


관직명 택호와는 달리 친족관계에서 ‘당호+친족호칭어’는 사용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무언재 아지매’ 등의 지칭으로는 사용할 수
있으나 호칭으로는 역시 사용할 수 없다.

 


2) 안주인(여성)의 출신지명+댁
반가에서 며느리를 맞으면 시부모나 집안어른들이 며느리의 출신지
이름을 따서 ‘안주인의 출신지명+댁’의 택호를 지어주는데 이를 종지
명제(從地名制)라고 한다. 한개마을에서 ‘여성의 출신지명+댁’으로 ‘집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는 ‘하회댁, 월곡댁’이 있다. ‘하회댁, 월곡댁’은
친정이 ‘하회, 월곡’에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후에 또 하회에서 시집온
사람이 있으면 하회의 다른 명칭이나 마을보다 큰 단위인 리(里)의 명
칭을 차용하기도 하고 면 이름 및 군 이름을 따오기도 한다. 그것은 택
호가 변별력을 갖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같은 택호를 사용하지 않기 위
함이다. 종지명제를 사용하는 택호인 <북비고택>의 ‘하회댁, 월곡댁’은
혼반관계와 당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회댁’의 출신지가 하회라고 한
다면 ‘하회댁’의 시댁은 한개마을 성산이씨 내에서도 남인계열일 가능
성이 높고 결국 같은 계열과 혼반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
분이다. 안주인의 출신지명이 하회인 경우에 택호를 ‘하회댁’이라고 한
다면, 남편은 ‘하회어른(양반)이 된다. 이것은 호칭과 지칭에 모두 사용
될 수 있지만 그 자녀는 ‘하회댁(네) 큰딸, 큰아들’ 등과 같이 지칭은
가능하지만 호칭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여성의 출신지명으로 나타내는 택호는 ‘집이름’뿐만 아니라
친족관계에서 호칭어, 지칭어로 사용될 수 있다. 한개마을 숙파 계열인
33대손 간의 호칭에서 드러난다. <북비고택>의 현 종손인 이수학 씨의
부인은 김천의 ‘봉개’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에 ‘봉개댁’으로 불리며,
<교리댁>의 이영태 씨의 부인의 친정은 ‘별성’이므로 ‘별성댁’으로 불
린다. 그리고 한주종택 이해석 씨 부인이 ‘못골댁’, 이건석 씨 부인이
‘하회댁’으로 불리는 것은 그 출신지명이 현풍의 지동(池洞:못골)과
122 語文學(第95輯)

 

‘하회’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수학 씨는 이건석 씨의 부인을 부를
때는 ‘하회 아지매’라고 부르며, 이건석 씨는 ‘하회 형님’이라고 부른
다. 이와 같이 ‘택호+친족호칭어’는 호칭어와 지칭어로 모두 사용될 수
있다. 이수학 씨는 ‘하회댁’, ‘별성댁’, 한주 종택의 ‘못골댁’과 형수뻘되
는 관계인데 만약 한 자리에 있다고 가정하면 ‘택호+아지매’로 불러야
변별력을 높일 수 있다.
시집온 여성들의 출신지명을 택호로 사용한 것은 여자가 남자집으
로 옮겨는 ‘시집살이혼’에 기인한다. 이러한 방식은 제한된 호칭의 범
주를 이용하여 개개인의 속성을 변별해 주며, 특히 동성 집단에서 택호
를 사용함으로써 항렬과 연령과 같은 친족의 서열의식을 반영하게 된
다. 그 밖에도 택호는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상대
방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택호+친족호칭어’를 사용하는 것은 청
자를 어른으로 예우하는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 택호가 항렬의식을 유
지, 지속시킨다면 문중조직은 항렬의식과 혈연의식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문중조직을 기반으로 한 혈연의식과 항렬의식은 택호
의 사용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안주인의 출신지명인 ‘택호’는 변별력을 높여주는 기능을 하기도 하
지만 혼반을 나타내는 구실을 한다. 그러므로 남자의 택호를 보면 그
집의 지체를 알 수 있다. 부인의 출신지명에 따른 택호는 남성들의 혼
반의 격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수학 씨는 한주
종택 이해석 씨의 부인을 ‘못골 아지매’라고 부른다고 하면서, ‘못골 아
지매’는 아버지의 외사촌이고 한훤당의 자손이라는 것까지 강조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신분내혼(身分內婚)의 규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
양반의 혼인은 통혼의 대상이 어느 정도 일정 문중(門中)으로 편향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문중끼리 혼인관계가 중첩되는 가운데 폭넓은 연대
관계가 형성되어 향촌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었으
며, 지역사회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작용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광희, 1996:138). 그러므로 전통사회의 혼인은 양반으로서 신분의 지
위를 잘 나타냄과 동시에 문중끼리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이 되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23

 

었다. 혼반을 형성하여 조선 후기 정치ㆍ사회적 추세에 따라 <북비고
택>은 학통 상으로는 퇴계학파, 붕당의 대립으로는 남인에 속하며, <교
리댁>은 학맥으로는 기호학파, 붕당의 대립으로는 노론에 속한다.
그러므로 <북비고택>과 <교리댁>은 친족임에도 불구하고 친족호칭
어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붕당의 대립’이라는 의식구조가 혈연의식에
기반한 항렬의식보다 우선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조선 시대 붕당의 대
립은 관직에 따른 권력투쟁이었고, 대표적인 붕당의 대립은 1,2차 예송
논쟁으로 드러났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한개마을의 <북비고택>과 <교
리댁>의 친족호칭어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고와 언어와의 관계
를 비교할 때 선후 관계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친
족호칭어는 사고나 의식세계가 언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북비고택>과 <교리댁>의 친족호칭어의 분화는 사고나
의식세계가 언어에 반영된 좋은 보기가 된다.

 

3) 관직명, 벼슬명+댁
한개마을에서 관직명을 ‘집이름(택호)’으로 사용하는 유일한 곳이
<교리댁>이다. <교리댁>은 이석구의 현손인 이귀상(李龜相)이 홍문관
의 교리를 역임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개마을은 광해군(재위 1608~
1623) 이후 아홉 명의 대과 급제자가 배출되고 소과 합격자는 24명에
이르지만, 벼슬에 오른 이가 많지 않음은 출세욕으로 과거 공부에 몰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북비고택>을 ‘대감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응와 이원조가 정2품인 공조판서의 벼슬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감은 조선 시대 정이품 이상의 벼슬아치를 높여 부르던 말
로 벼슬이나 지명에 붙여서 부르기도 하지만, 관직명이라고 할 수는 없
다. 또한 ‘진사댁’ 역시 관직명 택호라고 할 수는 없는데, 진사는 과거
에 합격한 이에게 붙여진 칭호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사댁, 대감댁’은 ‘벼슬명+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만약 <교리댁>
124 語文學(第95輯)

 

이 두 집이라면 변별성을 나타내기 위해 ‘마을이름+관직명 택호’로 사
용하기도 하고, ‘이 교리댁’과 같이 ‘남성의 성씨+관직명 택호’로도 사
용되며 안주인의 ‘출신지명+관직명 택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관직명 택호+지칭어’ 즉 ‘교리댁 어른, 교리댁 큰아들’과 같
이 지칭은 사용할 수 있지만 호칭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친족관계에서는 원칙적으로 관직명 택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리댁 아지매, 교리댁 아재’ 등으로 호칭어나 지칭하는 일은 거의 없
다. 그러나 비친족성원들이 연장자를 나타내는 의미로는 간혹 사용된
다. 예를 들면 ‘교리댁 할배’는 ‘교리댁에 계시는 연세가 높으신 분’이
라는 뜻이다.

 

5. 나오는 말
지금까지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붕당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
화 양상, 택호의 종류와 그 기능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
음과 같다.
① 한개마을의 성산이씨는 17세기 중엽 월봉 이정현에 의해 동성마
을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월봉의 아들 이수성(李壽星) 아
들이 백파(伯派), 중파(中派), 숙파(叔派), 계파(季派)의 파시조가
되었고, ‘북비고택, 한주종택, 월곡댁, 하회댁, 교리댁’은 모두 숙
파계열로 특이하게 섭사손(攝祠孫)으로 대를 이어온 혈연공동체
의 친족이다.
② 다양한 학맥이 공존하던 성주권내는 17세기를 기점으로 19세기
까지 노론학맥이 지배적이었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퇴계 학맥
이 우세하게 된다. 성산이씨는 당색에 따라 노론계열인 <교리댁,
진사댁, 극와고택>과 남인계열의 <북비고택 : 한주종택, 하회택,
월봉고택, 월곡댁>은 친족호칭어의 분화를 보인다. <북비고택>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25
의 친족호칭어는 고유어나 방언형인데 반해 <교리댁>은 표준어
에 가깝다. 노론계열과 남인계열의 친족호칭어의 분화 원인은 노
론계열에서 찾을 수 있다. 60년간의 세도정치를 펼친 노론계열은
중앙 정계로의 잦은 출사와 접촉에 영향을 받아 표준어에 가까운
호칭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교리댁>의 친족호칭어가 현대
국어의 표준어에 가까운 것도 조선후기 노론계열이 오랫동안 중
앙에서 세력을 장악함으로써 그들은 중앙 관직에 오를 기회가 많
았을 뿐만 아니라 잦은 교류 때문이다.
북비고택(남인계열)과 교리댁(노론계열)의 친족호칭어의 분화양
상을 분화 조건에 따른 분화 양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③ 직계와 방계 : 직계와 방계는 친족 계보에서는 분명하게 구분되지
만 친족호칭어에서는 방계 역시 직계어형을 반영한다. 예컨대 세
대에 관계없이 직계와 방계의 친족호칭어는 모두 ‘아비/어미’를
어기로 하고 있으나 <북비고택>은 ‘아비’의 방언형인 ‘아배’로
<교리댁>은 현대국어 표준어에 가까운 ‘아부지’로 분화된다. 방
계인 경우에는 <북비고택>은 ‘큰-, 작은-, 새-, 앚-’으로, <교리댁>
은 ‘큰-, O째, 앚-’ 등의 한정사에 따른 분화 양상을 보인다.
④ 항렬과 연령 : 동성마을의 친족은 항렬이 우선이지만 연령의 차이
가 아주 많은 경우에는 연령을 고려하기도 한다. 항렬이 높은 경
우에는 연령에 상관없이 ‘택호+아재’(북비고택)/‘택호+아제씨’(교
리댁)으로 분화된다. 그러나 항고연하 즉 항렬은 낮지만 나이가
많은 경우에 ‘택호+어른(북비고택)/택호어른, 택호+양반(교리댁)’
으로 분화된다.
⑤ 세대 : 친족호칭어는 <북비고택>과 <교리댁>이 세대에 따라 G-1
에서는 특별한 호칭법이 없이 이름, 종자명호칭을 사용하지만
G0-G3에서는 다양한 분화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친족호칭어는
세대와 계보적 공간이 일치하지만 성산이씨에서는 예외적인 예
가 나타난다. <북비고택>에서 형수(G0)를 ‘아지매’라고 부르는
경우, 혼입한 여성화자가 ‘기혼의 시동생, 시숙’을 ‘시백부’나 ‘시
126 語文學(第95輯)

 


숙부’와 같은 ‘아지뱀(북비고택)/아주버님(교리댁)으로 부르는 경
우, <북비고택>에서 ’형부‘를 ’새아재‘라고 부르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모두 원래의 친족호칭어가 가진 의미 영역보다
확대된 친족호칭어로 실현되는데, 조선후기 이후 남녀간의 엄격
한 내외나 사회적인 거리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⑥ 부계의 연령 및 결혼 여부 : 아버지 형제의 연령뿐만 아니라 결혼
여부에 따라 친족호칭어는 분화된다. 백부는 큰아배(북비고택),
큰아부지(교리댁), 아버지는 아배/아부지(북비고택), 아부지(교리
댁)로 분화된다. 그리고 숙부는 결혼 여부에 따라 기혼일 때는 공
통적으로 ‘작은 아부지’로 부르며, 미혼일 때는 <북비고택>은 ‘아
재’로 부르며, <교리댁>은 ‘아제씨, 삼촌’으로 부른다. 혼입한 여
성화자와 부계남성화자의 연령에 다양한 분화를 보인다. 예컨대
남편의 형님인 시숙은 아지뱀(북비고택)/아주버님(교리댁), 기혼
의 시동생은 ‘아지뱀<북비고택>/서방님<교리댁>, 미혼의 시동생
은 <북비고택>과 <교리댁> 모두 ‘데림’이라고 부른다.
⑦ 혈족과 인척 : <북비고택>은 인척의 호칭어에 ‘새-’를 접두하여
혈족과 구별하지만, <교리댁>은 이러한 장치가 따로 없다. 예컨
대 고모부는 ‘새아재(북비고택)/고모부(교리댁)’으로 분화되며,
형수는 ‘새아지매(북비고택)/형수님(교리댁)’, 자형은 ‘새형님(북
비고택)/자형(교리댁)’, 형부는 ‘새아재(북비고택)/형부(교리댁)’로
분화된다.
⑧ 성(性) : 화자와 청자의 성(性)에 따른 호칭 중에서 성(性)이나 당
색에 관계없이 ‘형님’으로 부른다. 부계남성화자가 기혼의 형에
대해 ‘형님(1), 혼입한 여성화자가 손윗동서에 대해 형님(2), 손위
시누이에 대해 형님(3)으로 구분하였다. 부계여성화자냐 남성화
자냐에 따라 자형의 호칭어와 형부의 호칭어는 세대의 차이를 보
인다.
⑨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택호 종류와 기능 : 한개마을의 택호는 관직
명, 안주인의 출신지명, 주인의 호에 ‘고택, 댁, 종택’이 붙는 경우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27
로 나누어진다. ‘북비고택, 월봉종택, 극와고택, 한주종택과 같이
‘남성의 호+종가, 종택, 고택’의 택호가 가장 많고, ‘관직명+댁’를
사용한 것은 ‘교리댁’뿐이다. 한개마을 택호의 특징은 사회적 위
세를 드러내는 ‘관직명+댁’보다는 <북비고택>과 같이 ‘주인의 호
+댁’을 더 선호하고 있다. 이는 한개마을이 강직한 선비마을을 상
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또한 ‘여성의 출신지명+댁’을 사용한 경우는 ‘하회댁, 월곡댁’
이 있다. 이는 택호 중에서 종지명제(從地名制)인 ‘여성의 출신지
명+댁’의 택호를 사용하는 것인데 친족 내에서의 변별력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혼반을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주제어 : 親族語, 呼稱語, 行列, 宅號 血族과 姻戚, 直系와 傍系, 年齡과 結婚, 세대,
朋黨, 老論系列, 南人系列, 北扉古宅, 한주종택, 하회댁, 월봉고택, 월곡댁,
南人系列, 교리댁, 진사댁, 극와고택, 老論系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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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07년 1월 31일 투고 완료되어
2007년 2월 1일부터 3월 10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07년 3월 14일 심사위원 및 편집위원 회의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안귀남
소속 :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주소 : [760-749] 경북 안동시 송현동 삼성명가 101동 1308호
전화번호 : 016-522-5020
전자우편 : akn5020@hanmail.net
130 語文學(第95輯)
Differentiation Aspect of Kinship Terminology
of Kinship Terminology Depend on Clique
in a Lineage Village of Seongju Hangae
An, Kwi-nam
[ Abstract ]
This thesis investigated differentiation aspect of Kinship terminology used by
the Lees of Seongsan, in a Lineage Village of Seongju Hangae depend on
clique.
1) There was built by by Weol-bong Lee Jeong hyeon, in a Lineage Village
of Hangae in the beginning 17th century, have thrived by Lee Suseong in
the beginning 17th century. Within the Sengju area, There was coexistence
a variety of sochools. There was divided into two different schoolsin a
Lineage Village of Seongju Hangae, No-ron group(老論系列) and Nam-in
group(南人系列) depend on clique, Between 17th to 19th. There was
superior No-ron group(老論系列) more than Nam-in group(南人系列),
there was superior Nam-in group(南人系列) after 19th.
Nam-in group(南人系列) is Lee Hwang schools in Yongnam(嶺南) area,
No-ron group(老論系列) is Lee-i in Giho(畿湖) area.
2) The qualities that constitute the inner form of termed kinship
organization-generation, lineality and collaterality, consanguine and affine,
age, marriage, gender, hang-lyeol(行列) and age, tone. The followings are
the coclusion of differentiation aspect of Kinship terminology Bukbigotaek
(北扉古宅) of Nam-in group(南人系列) and Gyoridaek(교리댁) of No-ron
group(老論系列). Terms of address of Bukbigotaek(北扉古宅) is ancient
language, Gyoridaek(교리댁) is standard terms of address.
3) Discriminal qualities meaning of lineality and collaterality has an
붕당의 대립에 따른 친족호칭어의 분화 양상(안귀남) 131
important function. A stem of ‘abea’(아배:北扉古宅)/abuji(아부지)
(Gyoridaek) is lineality and A stem of ‘ajea’(아재)(北扉古宅)/ajes’i(아제
씨)(Gyoridaek) is collaterality.
4) Terms of address for a specific kinship are changed various by father and
brothers of husband’ age. And terms of address for a specific kinship are
changed various by uncle and a sister in-law’ marriage, speaker’ gender,
hang-lyeol(行列) and age.
5) Generally, terms of address appear by generation, but the Bukbigotaek(北
扉古宅) of Nam-in group(南人系列) shows unique form of term, that and
terms of address generation do not correspondence, a case of sae-ajimae
(새아지매), ajibaem(아지뱀). It is because of keeping society’s distance.
6) Terms of address are definitely classified by are consanguine and affine.
Although in consanguine terms of address are differentiated in many ways,
in affine terms of address are defined by a single word ‘sae-’(새) in case
of Bukbigotaek(北扉古宅). But Gyoridaek(교리댁) is standard terms of
address.
Keywords : kinship terminology, terms of address, hang-lyeol, taek-ho consanguine
& affine, lineality & collaterality, age & marriage, Generation, a clique,
no-ron group, nam-in group, Bukbigotaek, Hanjujongtaek, Hahoedaek,
Weolbonggotaek, Weolgokdaek, was Nam-in group, on the other
side Gyoridaek, Jinsadaek, Geowagotaek, was No-ron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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